직업으로서의 소설가의 175p~ 발췌.
소설을 쓴다는 것은 밀실 안에서 이루어지는 한없이 개인적인 일입니다. 혼자 서재에 틀어박혀 책상을 마주하고(대부분의 경우) 아무것도 없었던 지점에서 가고으이 이야기를 일궈내고 그것을 문장의 형태로 바꿔나갑니다. 형상을 갖고 있지 않았던 주관적인 일들을 형상이 있는 객관적인 것으로(적어도 객관성을 추구하는 것으로)변환해가는 - 극히 간단히 정의하자면 그것이 우리 소설가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작업입니다.
"아니, 나는 서재 같은 대단한 건 없는데요"라는 사람도 아마 계시겠지요. 나도 소설을 처음 쓰기 시작할 무렵에는 서재 따위는 없었습니다. 센다가야의 하토노모리하치만 신사 근처의 좁은 아파트에서 주방 식탁을 마주하고 아내가 잠들어버린 한밤중에 나 혼자 원고지에 사각사각 글을 썼습니다. 그렇게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1973년의 핀볼", 처음 두 권의 소설을 써냈습니다.
(......중략....)
그리고 그 계기가 어떤 것이든 일단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소설가는 외톨이가 욉니다. 아무도 그/ 그녀를 도와주지 않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리서처가 붙는 일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 역할은 단지 자료나 재료를 수집하는 것 뿐입니다. 아무도 그/그려의 머릿속을 정리해주지 않고 아무도 적합한 단어를 어딘가에서 찾아와주지 않습니다. 일단 스스로 시작한 일은 스스로 추진해나가고 완성해내야합니다.
이를테면, 이건 어디까지나 내 경우가 그렇다는 것인데, 장편 소설 한 편을 쓰려면 일 년 이상(이 년, 때로는 삼 년)을 서재에 틀어박혀 책상 앞에서 혼자 꼬박꼬박 원고를 쓰게 됩니다. 새벽에 일어나 매일 다섯 시간에서 여섯 시간, 의식을 집중해서 집필합니다. 그만큼 필사적으로 뭔가를 생각하다 보면 뇌는 일종의 과열 상태에 빠져서(문자 그대로 두피가 뜨거워지기도 합니다) 한참 동안 머리가 멍해집니다. 그래서 오후에는 낮잠을 자거나 음악을 듣거나 그리 방해가 되지 않는 책을 읽기도 합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아무래도 운동 부족에 빠지기 쉬워서 날마다 한 시간 정도는 밖에 나가 운동을 합니다. 그리고 다음날의 작업에 대비합니다. 날이면 날마다 판박이처럼 똑같은 짓을 반복합니다.
고독한 작업, 이라고 하면 너무도 범속한 표현이지만 소설을 쓴다는 것은 - 특히 긴 소설을 쓰는 경우에는 - 실제로 상당히 고독한 작업입니다. 때때로 깊은 우물 밑바닥에 혼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아무도 구해주러 오지 않고 아무도 "오늘 아주 잘했어"라고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해주지도 않습니다. 그 결과물인 작품이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는 일도 있지만(물론 잘되면), 그것을 써내는 작업 그 자체에 대해 사람들은 딱히 평가해주지 않습니다. 그건 작가 혼자서 묵묵히 짊어지고 가야 할 짐입니다.
나는 그런 쪽의 작업에 관해서는 상당히 인내심 강한 성격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때로는 지긋지긋하고 싫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가오는 날들을 하루 또 하루, 마치 기와 직인이 기와를 쌓아가듯이 참을성 있게 꼼꼼히 쌓아가는 것에 의해 이윽고 어느 시점에 '그래, 뭐니뭐니 해도 나는 작가야'라는 실감을 손에 쥘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실감을 '좋은 것', '축하 할 것'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미국의 금주 단체 표어에 'One day at a time'이라는 게 있는데, 그야 말로 그것입니다. 리듬이 흐트러지지 않게 다가오는 날들을 하루하루 꾸준히 끌어당겨 자꾸자꾸 뒤로 보내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묵묵히 게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안에서 '뭔가'가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것이 일어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당신은 그것을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만 합니다. 하루는 어디까지나 하루씩입니다.한꺼번에 몰아 이틀 사흘씩 해치울 수는 없습니다.
그런 작업을 인내심을 갖고 꼬박꼬박 해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말할 것도 없이 지속력입니다.
책상 앞에 앉아 의식을 집중하는 건 사흘이 한도, 라는 사람은 도저히 소설가는 될 수 없습니다. 사흘이면 단편소설은 쓸 수 있다, 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분명 맞는 말입니다. 사흘이면 단편소설 한 편쯤은 쓱싹 써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사흘 걸려 단편소설 한 편을 쓴 다음에 의식을 일단 제.로.상.태.로 털어버리고 새로운 태세를 갖춰 다시 사흘 걸려 다음 단편소설을 한 편 쓴다, 라는 식의 사이클은 길게 반복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 짤막짤막하게 끊기는 작업을 계속하다가는 아마 글을 쓰는 사람의 몸이 우선 당해내지 못합니다. 단편소설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라도 직업 작가로서 먹고사는 이상, 흐름이 어느 정도 연결되어야 합니다. 긴 세월 동안 창작 활동을 이어가려면 장편소설 작가든 단편소설 작가든 지속적인 작업을 가능하게 해줄 만한 지속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면 지속력이 몸에 배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되는가.
거기에 대한 내 대답은 단 한 가지, 아주 심플합니다
- 기초 체력이 몸에 배도록 할 것. 다부지고 끈질긴, 피지컬한 힘을 획득할 것. 자신의 몸을 한편으로 만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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