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he inspiration/The Readable stuffs &

[필사] 무라카미 하루키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中(57~58P)

by RoundRyun 2019. 11. 13.

 

그때 나는 퍼뜩 생각했습니다. 틀림없이 나는 <군조>신인상을 탈 것이라고. 그리고 그 길로 소설가가 되어 어느정도의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심히 건방진 소리 같지만, 나는 왠지 그렇게 확신했습니다. 매우 생생하게. 그건 논리적이라기 보다 거의 직관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삼십여 년 전 봄날 오후에 진구 구장 외야석에서 내손에 하늟하늘 떨어져 내려온 것의 감촉을 나는 아직 또렷이 기억하고 있고, 그 일 년 뒤의 봄날 오후에 센다가야 초등학교 옆에서 주운 상처 입은 비둘기의 온기를 똑같이 내 손바닥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소설 쓰기'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할 때, 항상 그 감촉을 다시 떠올립니다. 그런 기억이 의미하는 것은 내 안에 있을 터인  뭔가를 믿는 것이고. 그것이 키워낼 가능성을 꿈꾸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감촉이 나의 내부에 아직껏 남아 있다는 것은 정말로 멋진 일입니다.

 

첫 소설을 쓸 때 느꼈던, 문장을 만드는 일의 '기분 좋음' '즐거움'은 지금도 기본적으로 변함이 없습니다.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 주방에서 커피를 데워 큼직한 머그잔에 따르고그 잔을 들고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켭니다(이따금 원고지와 오래도록 애용해온 몽블랑 굵은 만년필이 그리워지지만). 그리고 '자, 이제부터 뭘 써볼까'하고 생각을 굴립니다. 그때는 정말로 행복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뭔가 써내는 것을 고통이라고 느낀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소설이 안써져서 고생했다는 경험도(감사하게도) 없습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 내 생각에는 만일 즐겁지 않다면 애초에 소설을 쓰는 의미 따위는 없습니다. 고역으로서 소설을 쓴다는 사고방식에 나는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소설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퐁퐁 샘솟듯이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나를 무슨 천재라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뭔가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습니다. 물론 이렇게 삼십 년 넘게 전업 소설가로 밥을 먹고 있으니 전혀 재능이 없는 건 아니겠지요. 아마도 원래 어떤 종류의 자질, 혹은 개성적인 경향 같은 건 있었던 모양이죠. 하지만 그런 것에 대해 내가 이러니 저러니 궁리해봤자 아무 도움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판단은 다른 누군가에게 -만일 그런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면 그렇다는 얘기지만- 맡겨두면 될 일 입니다.